사랑의 힘이 위대하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겁니다.

늘 옆에서 사랑으로 얘기하고 보듬어주시던 분을 떠나보내고 나니...

이제야 알게 되는 듯합니다.

오늘 따뜻한 하루님의 보내온 편지 중 감동이야기가 있어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이미지출처: 따뜻한 하루님

병동 2층에서 나지막이 노래가 들려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그러면 중증환자부터 치매 노인까지 모두
자신만의 그리운 누군가, 가고 싶은 그곳을 떠올리며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다른 의사들과 회진부터 남다른 최고령 한원주 원장님.
그리고 원장님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환자들...
이 평화롭고 정겨운 일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그너스 재활 요양병원의 행복한
아침 풍경이었습니다.

이미지출처:따뜻한 하루

한원주 원장님은 젊은 시절, 의과대학교를 졸업하고
산부인과 전문의를 딴 뒤 미국으로 건너가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쳐서 10년 동안
근무한 뒤 귀국했습니다.

당시에는 미국에서 의학을 공부한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귀국 후 개원을 하니 환자들이 수없이 밀려왔고,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었습니다.

그렇게 잘 나가던 그녀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이었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린 그녀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이자 의사였던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결핵 퇴치 운동과 콜레라 예방 운동,
한센병 환자와 산골 주민들을 위한 무료진료에
앞장섰던 아버지였습니다.

한원주 원장님 아버지가 자신에게 의학을
공부하게 한 것도 어쩌면 다른 이웃들을 위해
살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기로 한 이후
한원주 원장님은 부와 명예를 한순간에 버리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살았습니다.

1982년, 국내 최초로 환자의 질병뿐만 아니라
정신과 환경까지 함께 치료하는 '전인치유소'를 열어
가난한 환자들의 생활비, 장학금을 지원하며
온전한 자립을 돕는 무료 의료봉사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흔이 훌쩍 넘은 연세에도
환자를 돌보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가족들도 힘겨워하는 치매 노인들을 위해
의술을 펼쳤습니다.

요양병원에서 받는 월급 대부분을 사회단체에 기부하며
주말이면 외국인 무료 진료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주기적으로 해외 의료봉사도 다니셨습니다.

따뜻한 하루는 2년 전, 한원주 원장님을 만나 뵙고
그간의 귀한 걸음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칭찬 꽃바구니를 전해드렸었습니다.

당시 92세였음에도 주5일을 병원에서 숙식하며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는 원장님을 뵈며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품었었습니다.

그리고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귀감이
되시길 바라고 소망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9월 30일, 영원히 환자들 곁에서
함께 해주실 것 같았던 한원주 원장님이 숙환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별세 직전인 지난달 7일까지도 직접 회진을 돌며
하루 1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셨다던 원장님은
갑작스레 노환이 악화해 하늘의 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주일을 원장님의 뜻에 따라
자신이 헌신했던 요양병원에서 보내다가
영면에 들어가셨습니다.

이미지출처: 따뜻한 하루

 

환자들에게 평생 최선을 다했던 한원주 원장님.
그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은
세 마디였습니다.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정말 원장님다운 아름다운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원한 이별이 너무도 아쉽고 슬프지만
한원주 원장님,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쉬세요.
그리고 원장님이 남긴 이웃을 향한 사랑의 정신,
부족하지만 따뜻한 하루가 조금이나마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오늘의 명언
사랑으로 병을 낫게 할 수 있다.
- 한원주 원장 -

한원주 원장님의 말처럼 사랑으로 감싸면 모든 것이 치유가능하죠!

원장님의 따뜻한 사랑의 마음은 모두에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서로 사랑하고 아름다운 말로 상대방에게,

가족에게 힘과 용기를 주도록 노력해 보아요^^

오늘 하루도 화이팅!!

내일 제8호 태풍 '바비'가 전국을 덮친다고 합니다.

너무나 걱정되는데요...

'매미'보다도 더 강하다고 모두들 피해없도록 단도리 잘 하세요~

오늘은 따뜻한 하루님으로 부터 온 편지

'어머니의 편지'를 읽고 자식을 생각하며 자신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자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자식에게 용기와 믿음의 편지를 보낸 '어머니의 편지'로

따뜻한 감동을 받았으면 좋겠네요^^

'어머니의 편지'

이미지 출처: 따뜻한 하루

프랑스의 공군 조종사이자 외교관, 소설가였던
로맹 가리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장신구를 팔아서
겨우 생계를 이어 나갈 만큼 가난했습니다.

힘겨운 어린 시절이었지만,
어머니는 늘 로맹 가리에게 희망의 말을 전해주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

"너는 훌륭한 소설가도 되고
외교관도 될 거야."

시간이 흘러 공군 조종사가 된 로맹 가리는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쟁터로 떠나야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전쟁터에 있는 아들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서 아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네가 마음먹은 대로
분명히 이루어질 거야."

어머니는 편지로 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려고 애썼습니다.

아들은 3년 동안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편지를
계속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고향으로 갈 때쯤에는 이 편지가
250통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들아, 내가 한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다면 좋겠구나."

어머니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는 것인지
그는 상상이 가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그는 많은 훈장과 공군 대위 계급장을 달고
고향으로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그를 반겨줄 어머니는 안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신 것이었습니다.
아들에게 보낸 250통의 편지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10일 동안
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서
미리 써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1주일 간격으로
편지를 아들에게 보내 달라고
부탁해 놓았던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따뜻한 하루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아들에게 희망을 담은 편지를 온 힘을 다해
써 내려갔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한

없는 사랑을
우리는, 어떻게 다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평생 살면서 조금이나마
닮아갈 수 있을까요...


# 오늘의 명언
저울의 한쪽 편에 세계를 실어 놓고
다른 한쪽 편에 나의 어머니를 실어 놓는다면,
세계의 편이 훨씬 가벼울 것이다.
- 랑구랄 –

 어머니의 존재는 자식에게는 너무나 한이 없습니다.

주고도 모자라는 것 같은 사랑...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에 얼마나 자식은 생각할찌???

우리가 평생 살면서 조금이나마 어머니의 사랑 닮아 갈 수 있을까요~~

"어머니 나의 어머니, 사랑합니다 ♡"

지금은 제 곁엔 없지만 이 말 밖에 할 수가 없네요.

당신의 죽음도 용서를 구하는 어머니...

우리 어머니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란 전화 한통 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