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변을 돌아보면 남을 생각하는 마음보다는 나 자신만을 생각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아
'정말 삭막하다!'할 정도로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지만, 예전에 비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개인주의로 바뀌는 듯 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나만 아니면 되지! 하는 이기주의가 되는 듯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위러브유 장길자회장님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위러브유 장길자회장 어머니의 마음으로 사회를 바꾼다.

 위러브유 장길자회장님

어머니의 마음으로 세계 각국의 수많은 이들을 돕고 보살핍니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뤄진다고 항상 장길자회장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가정에서 바른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한 사람은 사회와 국가를 윤택하게 하고
인류 발전에도 공헌하게 됩니다.

이처럼 개인과 가정, 사회, 국가, 인류의 행복과 번영의 이면에는 "어머니"가 있답니다.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 주요복지사업


장길자회장님은 자녀들에게 자신의 모든 관심과 사랑을 쏟으며 가장 낮은 모습으로 헌신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인류의 복지와 화합, 평화에 이바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위러브유는 장길자회장님을 어머니라고 합니다!

77억의 지구촌 가족의 행복을 위해 모든 관심을 쏟아온 장길자회장님의 평생은
오롯이 "어머니의 삶"이었습니다.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 새생명 사랑의 콘서트
위러브유 장길자회장님 어린이 의료지원사업


가뿐 숨을 몰아쉬는 심장병 어린이들을 비롯해 아이들에게 새 생명을 주고,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사회의 그늘진 곳에 소외된 이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전해오고 있답니다.

전쟁과 분쟁이 없는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이 도래하기까지
"어머니 사랑"의 행보는 쉼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봄비가 내립니다.

창 밖으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면,,,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 명예회장,

장길자 회장님께서 걸어오신 발자취를 따라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장길자회장님을 알게 된 것은 기억하기로는

'심장병 어린이 돕기'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일을 하시는구나!!! 만 알았지 복지단체 이름은 몰랐는데,

검색 해 보니 새생명 복지회에서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

장길자 명예회장님이 걸어온 길,

역사의 파란을 겪어낸 ‘한국인’의 이야기는 장길자 명예회장의 삶을 단편적으로나마 그려냅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대한민국 GNP(국민총생산)는 1인당 67달러에 불과했습니다.

뿌리까지 소실된 나라의 살림살이가 ‘한강의 기적’을 거쳐 구색을 갖추기까지는 반세기 남짓의 짧고도

험준한 시간이 들었습니다.

우리집 이웃집 할 것 없이 하루 한 끼를 걱정해야 했던 시절, 장길자 회장은 된장찌개 한 그릇이라도 나누며

사람들과 ‘함께’했습니다. 어머니가 가족들의 식사를 챙기듯 일상적이면서도 포근하게 시작된 나눔과

봉사의 손길은 연탄가스에 중독돼 생명이 위독한 이웃집 노부부를 살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가족을 돌보듯 지극한 사랑은 오늘날까지도 한결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 장길자 명예회장

 

장길자 회장 “내 가족의 일처럼”

1995년 ~2000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무료급식봉사
7개국 복지소외이웃 의료∙생계비 지원
제1회 새생명 사랑의 콘서트 개최

전쟁으로 얼룩진 과거를 딛고 점차 산업발전과 경제부흥에 박차를 가하며 맞이한 90년대. GDP(국내총생산)가 1995년에 이르자 1만 달러를 돌파할 만큼 대한민국의 먹고사는 수준은 나아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는 맹목적 성장의 어두움도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부실설계로 인한 인재(人災)의 대명사로 거론되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그해 6월 발생했습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최고급 백화점이 주저앉았다는 사실에 전 국민이 경악했습니다. 502명이 죽고 937명이 부상 당한 대형 참사였습니다.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장길자 명예회장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두 팔 걷어 나른 것은 ‘어머니 사랑’을 담은 따뜻한 집밥이었습니다. 봉사자들은 지하에 들어간 구조대원들을 일일이 불러 모아 그들의 끼니를 챙겼습니다. 붕괴된 건물 잔해 속에서 생명을 구하느라 식사 때도 잊고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던 구조대원들은 장길자 명예회장과 봉사자들이 마련한 국밥 한 그릇을 비우며 구조에 더욱 최선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이웃을 가족처럼 여기며 그들의 슬픔을 보듬어가던 장길자 명예회장에게는 바다 건너 이웃나라 사람들의 형편도 내 가족의 일이었습니다. 필리핀, 파키스탄, 가봉 등 7개국의 복지소외이웃들에게 의료비와 생계비를 지원하며 ‘어머니 사랑’을 건넸습니다. 2000년, 밀레니엄 시대가 개막되었을 때 장길자 회장은 만국 공통어 ‘음악’으로 지구촌 가족들의 시린 삶을 녹이는 화합과 나눔의 장을 열었습니다. 20년 후 국제위러브유(이하 위러브유)의 대표 복지행사가 될 ‘새생명 사랑의 콘서트’의 첫 무대였습니다.

 


장길자 회장의 ‘첫 회’의 의미

2001년 ~2005년

(사)새생명복지회 설립
제1회 새생명 사랑 가족걷기대회 개최
대한민국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무료급식봉사
대한민국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서포터즈 활동 및 자원봉사
제1회 어머니 사랑의 김장 나누기 개최
장길자 회장 체육훈장 맹호장 수훈
제1회 헌혈하나둘운동 개최

이 시기 장길자 회장은 사단법인 새생명복지회를 설립하고 복지활동을 본격화했습니다. 이후 매년 4~5월이 되면 가족 단위 회원들이 산책로를 걸으며 지구촌 가족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새생명 사랑 가족걷기대회'와 국내 다문화가정, 홀몸어르신가정 등 복지소외이웃들의 겨울 양식인 김장김치를 손수 담가 지원하는 ‘어머니 사랑의 김장 나누기', 그리고 헌혈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헌혈하나둘운동’ 등 굵직한 복지행사의 ‘첫 회’를 열었습니다. 보다 많은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범세계적 복지행보의 ‘시작’이었습니다.

그사이 2003년, 대구에서는 가슴 아픈 참사가 있었습니다. 지하철 화재로 사망자 192명을 포함, 340여 명의 무고한 사상자가 발생한 것입니다. 장길자 회장과 회원들은 곧장 유가족들의 임시 거처인 대구시민회관 앞에 천막을 치고 무료급식봉사에 나서, 사랑하는 가족과 소중한 이들을 잃어버린 이웃들과 55일간 함께하며 그들의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같은 해 8월에는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가 개막했습니다. 장길자 명예회장과 전국 각지 회원들은 국제경기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서포터즈 활동과 자원봉사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는 1년 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수훈으로 이어졌습니다.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 장길자 명예회장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 장길자 회장님께서는 1995년부터 불우이웃들을 위해 다양한 봉사활동으로

우리곁에 있었군요. 저는 새생명복지회에서 주최하는 '심장병 어린이 돕기','대구지하철참사 급식봉사'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서포터즈 활동을 할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변함없이 우리 곁에서 함께 하시며 각처에 도움의 손길, 사랑의 손길을 펼치시는 장길자 회장님의

발자취에 박수를 보냅니다.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 장길자 회장님은 국제지원,사회복지,아동/청소년교육,노인복지,재해구호(긴급구호)등

다양한 방법으로 국가와 지역사회에 더 나아가서는 지구촌 곳곳에 위러브유의 사랑을 전합니다.

다음시간에는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 장길자회장님의 이후 발자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지금도 위러브유 장길자 회장님의 발자취는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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